향수를 싫어하지 않지만 일부러 찾진 않는다. 향수 대신 비누냄새를 효과적으로 발산하는 묘기도 없다. 한 마디로 꾸미는 일은 먹고 노는 일 다음으로 미루는 반도의 흔한 아녀자다.

하지만 이 방면의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십년에 한 번씩 강산을 바꾸고 나면 패션뷰티의 전략이란 게 생기게 마련. 오늘은 향수다. 

화이트데이가 코앞인데다 마침 딥디크의 신상 소식도 전한 마당이니 자연스럽지 아니한가. 

 

불가리 ‘오 떼 블랑’ 

십년 넘게 써오고 있는 요즘 말로 ‘인생 향수’다. 뿌리지도 않을 거면서 수십 종의 향수를 모으기도 했고, 담당기자가 되면서부터는 제품사에서 보내오는 것까지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향수에 파묻히기도 했다. 변별력이라는 것은 원래 개체가 많은 상태에서 생긴다. 

한 사람의 스타일은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서서히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오 떼 블랑’은 내게 독자적인 플레이도 중요하지만 조화가 필수인 기자생활과 비슷한 질감의 향수다. 여자임을 강조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조직문화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중성적이면서 모던한 잔향은 특히 좋아하는 포인트다. 

가끔 조강지처 두고 여염집 아낙의 허연 목선에 홀리듯 다른 향수를 뿌리기도 하는데,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반드시 ‘오 떼 블랑’으로 돌아온다. 익숙하고 안정적이면서 내 이름표를 찾아 가슴에 단 기분이랄까. 이런 게 조강지처의 위력이겠거니. 

 

조 말론 ‘블랙베리 앤 베이’ 

누군가에게 향수를 선물한다는 것은 배짱 아니면 용기다. 향수는 세심하게 취향을 고려해야 하는 종목이다. 제 아무리 '요즘 대세' 조 말론이라 한들 첫 눈에 ‘요거다!’ 하기란 쉽지 않다. 비누 한 장 선물하는 것과는 다르니까. 

그런데 내가 향수를 뿌리는 이유가 발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정을 위해서임을 잘 아는 절친의 선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향이 아닌 것은 당연하고, 남녀공용일 만큼 중성적인 향. 이미 대한민국에서도 수만 명이 쓰고 있을 이 향수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오 떼 블랑’과 마찬가지로 찰나의 잔향 때문이었다. 

운전 중 코너를 돌면서 핸들 잡은 손의 위치를 바꾸던 중이었다. 백미러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던 순간 매혹적인 잔향이 내 주변에 너울너울 내려앉았다. 당분간은 써볼 참이다. 여염집 아낙의 목선에 홀린 김에 앞모습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에디터 안은영 eve@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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