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시인 윤동주 서거 71주기를 맞아 영화 ‘동주’(2월17일 개봉)가 뚜벅뚜벅 걸어온다. 저예산 흑백영화로 새로운 도전을 한 이준익(57) 감독을 만났다. 더욱 원숙해진 작품세계, 평소보다 더 강력해진 직설화법으로 인터뷰이 석에 앉은 감독과의 7문7답.

 


1.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12·28 합의’ 파장이 잦아들지 않는 시점에 개봉하게 됐다. 그 시대를 살았던 천재 시인을 조명한 이유가 궁금하다.

윤동주(강하늘)와 그의 고종사촌이자 벗인 송몽규(박정민)의 짧은 인생을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목표는 아니었다. 동주의 아름다운 시를 낭독하려고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과정이자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 시대에 대한 미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해와 억울하다는 하소연만 해왔다. 유럽에선 나치즘 파시즘의 가해자, 제국주의 부도덕성에 대해 변별력 있게 지적했다. 우리도 가해자에 대한 연구, 분석에 따른 변별 및 방향성이 세워져야 한다. 두 청춘을 통해 관심이 생겨나기를 원했다. 목표점을 선명하게 증명해내진 못했지만 입구엔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2. 일본 경찰서 조사실에서 윤동주와 송몽규가 고등 형사와 피 끓는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그런 메시지가 담긴 듯 보인다.

 

특별 고등형사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정당성과 제국주의 명분을 강요하는데 그때 몽규, 동주가 정확하게 반론을 제기한다. 특히 비문명국을 위한 문명국의 아시아 해방 운운과 전시에는 개인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설교에 접한 몽규가 군국주의의 모순에 대해 강렬하게 비난한다. 이 장면은 두 청춘이 껴안았던 죽음의 가치를 세워주는 일이라고 여겼다.

 

3. 최근 한국영화에서 접하기 힘든 흑백영화다. 흑백이다보니 오히려 그 시절에 있는 듯 리얼리티가 살아났다. 몰입에도 도움이 된 듯하다. 의도적인 선택이었나?

 

5억원의 저예산으로 어떻게 상업영화를 찍겠나. 더욱이 북간도 용정 마을부터 도쿄와 교토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장소가 굉장히 많았고, 그 시대를 재현할 공간은 마땅치 않았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흑백이 주는 단순함이 본질을 명료하게 만들어줬다. 덧붙이자면 ‘동주’의 스펙터클은 시 자체다. 시어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감정들이 스펙터클하다.

 


4. ‘동주’는 20년의 시간이 발효시킨 결과물 아닌가?

 

1995년 영화 ‘아나키스트’ 때부터 심어놨던 끈이다. 시나리오를 쓰러 중국 상하이를 헤매고 다닐 때 자료서적만 100권을 독파했다. 그러면서 동주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름 없는 인물들을 품고 지냈다. 제일 먼저 꺼낸 게 ‘아나키스트’였다. 그런데 영화가 큰 성과를 얻지 못하며 묻어뒀다가 2002년 일본에 갔다. 가미카제 특공대 기지였던 가고시마 현 치란 비행장(육군비행학교)에는 황국의 신민이 돼 끌려간 조선인 비행사 11명이 있었다. 이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는 완성을 못했다. 시간이 흘러 2011년 동주 관련 다큐멘터리를 접한 뒤 프로듀서와 함께 시인이 유학했던 교토의 도시샤 대학을 찾았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기념비 앞에 섰는데 (욕설이 튀어나옴) 일본이 죽인 인물을 모셔놓은 게 아이러니했다. 동주가 존경했던 시인 정지용의 ‘압천’을 걸으며 시인을 상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2013년 ‘소원’을 찍고 난 뒤 2014년 마침내 ‘동주’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5. 배우 황정민의 추천으로 캐스팅한 강하늘 박정민의 연기는 실존 인물임에도 캐릭터에 말려들지 않고 빛을 낸다. 감독으로서 점수를 매긴다면.

 

박정민의 밀도는 놀라운 수준까지 도달해 있는 연기법이다. 송몽규와의 밀착도를 아주 잘 살려냈다. 강하늘의 경우, 과하지 않은 연기가 가장 어려운데 적정선을 아주 잘 찾아냈다. 송몽규와 연전에서 시와 문학, 이념을 놓고 아귀다툼을 벌일 때 진짜 동주 같았다. 그런 동주를 배려심 있게 받아내는 몽규 역 박정민의 표정을 보면 나이가 어린데 내면의 감정을 저토록 잘 표현할까 싶었다. ‘라디오스타’(2006)의 비극 버전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매니저 역 안성기가 박정민, 왕년의 톱가수 역 박중훈은 강하늘이라고 할까. 시대와 캐릭터, 입장이 전혀 다른 영화지만. 관계의 변화나 심리와 감정은 비슷하다.

 


6. 한국영화계에 50대 감독들이 부재하다. 30~40대 시절 색깔 뚜렷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다 사라진 느낌이다.

 

정확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모자란 게 좋다. 넘치는 게 불안하다. 넘치면 화를 불러오지 않나. 돈과 독은 고작 ‘ㄱ’과 ‘ㄴ’ 차이지만 돈은 독이 묻어서 온다고 한다. 넘치는 건 모자람만 못하다. 능력 있는 감독들이 이른 나이에 성공을 하면서 사라져버린 듯해 씁쓸하다. 제작자로 활동하다가 본격적으로 감독 전환했고, 많이 찍다보니 실력도 늘었다. 안 늘면 죽어야지(웃음). 늦고 모자랐으니 생명력이 길어진 것 같다.

 

7. '왕의 남자' '평양성'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 사극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소원’ 이후 시대를 가로지르며 인간의 관계에 천착하는 모습이다.

 

1970~80년대에 청춘시절을 보낸 내 입장에선 ‘평양성’까지는 집단과 개인의 관계 설정에 의미를 부여하며 연출해 왔다. 20세기가 집단과 개인의 관계정립 과정이었다면 21세기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화두인 시대다. 이런 관계정립을 현재 한국의 개인주의와 보폭을 맞춰 작업해나가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소원’으로부터 출발해 ‘사도’에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비극의 가족사를 풀어냈고, ‘동주’에서는 동주와 몽규라는 개인 관계를 통해 가해자에 대한 변별점을 찾아내려 했다.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사진 김선우(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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