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과 사이키델릭 여왕’ 펄 시스터즈

 

요즘 인기 있는 tvN 드라마 ‘시그널’이나 Mnet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101’을 보는 중장년 시청자라면 자연스레 펄 시스터즈를 연상할 법하다. OST ‘떠나야할 그 사람’의 원곡자이자 걸그룹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1968년 한국 가요계에 독특한 조합의 샛별이 떠올랐다. 배인순·인숙 자매로 구성된 펄 시스터즈였다. 166cm가 넘는 키에 균형 잡힌 몸매, 예쁜 용모, 호소력 짙은 가창력의 여대생 가수에 대중은 열광했다.

 

펄 시스터즈에 앞서 50년대 후반 은방울 자매와 60년대 미국 라스베이거스 및 TV 버라이어티 쇼 ‘에드 설리번쇼’ 등에 출연하며 활동한 3인조 김 시스터즈가 있었으나 각각 트로트, 해외 무대 주력으로 인해 국내 청춘 세대를 사로잡기엔 한계가 있었다.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세 살 터울의 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와 춤에 재능을 보였다. 67년 미8군에서 개최한 보컬그룹 오디션에 구경 갔다가 얼떨결에 참가한 테스트에 합격,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68년 1월 TBC 인기 쇼프로그램 ‘쇼쇼쇼’ 출연 이후 워커힐 쇼단의 일원으로 캐스팅돼 촉망받는 신인으로 성장했다.

 

 

음악 스승은 ‘록의 대부’ 신중현이었다. 당시 베트남으로 떠날 결심을 하고 있던 신중현은 펄 자매의 설득에 마음을 돌려 소울과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접목시킨 실험적인 음악에 걸맞은 창법을 지도했다.

 

68년 ‘커피한잔’ ‘님아’ ‘떠나가야 할 그 사람’이 담긴 데뷔 음반이 나오자 “내 속을 태우는구려”(커피한잔)란 직설적인 노랫말과 단순한 멜로디에 베트남 참전 문제로 우울했던 젊은이들은 열광했고, 기성세대는 “이게 무슨 우리 노래냐, 말세가 왔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데뷔작은 당시로선 믿기 힘든 100만장 판매고를 올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69년 12월 MBC ‘10대가수 청백전’에서 겨우 2년차 신인이 최고 영예인 가수왕을 품었다. 바야흐로 소울과 사이키델릭 여왕 '펄자매' 전성기가 막을 올렸다.

 

 

 

60년대 후반 가요계는 이미자 남진 나훈아 배호 하춘화 등 트로트 가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 한편에 미8군 무대 출신 패티김 최희준 현미 한명숙 윤복희 김상희와 같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계열의 개성 강한 팝음악 가수들, 신중현 유주용 등 록 뮤지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가운데 등장한 펄 시즈터즈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메신저이자 신중현 사단의 뮤즈였다.

 

가수왕 수상 이후 안타깝게 신중현과 결별하고 70년 ‘속 님아’ ‘기다리겠오(TBC 드라마 ‘두남자’ 주제가)’ ‘싫어’ 등을 담은 스튜디오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73년 도쿄국제가요제에는 이봉조 작곡의 서정적인 발라드 ‘사랑의 교실’(71년 영화 ‘연애교실’ 주제가)로 본선 진출하며 일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펄 시스터즈는 4박자의 트로트가 대세이던 시절, 변칙적 리듬과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에 맞춰 영혼을 끌어안는 소울과 블루스, 절규하듯 내지르는 블루스 록 창법을 구사해 신선함을 지폈다. 상큼함과 관능, 허무주의를 오가는 보컬 스펙트럼은 매우 넓었으며 배인순의 부드러운 중저음과 동생 인숙의 비성이 살짝 들어간 아름다운 고음 하모니는 풍성했다. 당시로선 눈이 돌아갈 만한 율동은 화려했다.

 

비주얼 면에서도 오빠·삼촌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통통한 고전적 이미지의 언니와 날씬하고 시크한 미모의 동생 조합으로 팬들의 이질적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다. 또한 패셔니스타이자 트렌드 세터로 군림했다. 여성 디자이너 노라노가 만든 판탈롱 열풍을 일으켰는가 하면 무대에 설 때마다 세련된 헤어스타일, 베레모·헤어밴드·미니스커트·핫팬츠·트위드 재킷 등 패셔너블한 스타일링을 자랑했다.

 

 

이후 펄 시스터즈는 캐나다와 미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그러다 76년 배인순이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깜짝 결혼식을 올리며 해체됐다.

 

미국으로 건너간 배인숙은 오랜 공백기 끝에 83년 샹송 ‘시인’을 직접 번안한 고혹적인 미디움 템포 발라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를 발표해 다시금 주목 받았다가 결혼과 함께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최 회장과 이혼한 배인순이 2004년 솔로 음반을 내면서 재결합 소식이 들려왔으나 결국 루머로 그쳤다.

 

9년의 짧은 활동이었지만 펄 자매는 국내 가요계에 한 획을 그으며 깊고도 진한 흔적을 남겼다.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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